문명과 수학 1편에서 원시시대의 수의 개념의 탄생에 대하여 다루었습니다.
하나, 둘 많다가 다였던 원시시대에서 더 많은 숫자를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수)
사람들끼리 바로 손가락으로 수를 표현하여 의사가 전달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숫자를 기록하고
본격적으로 숫자를 공부하기 시작하였을까요?
(학생들이 자주 수학이 힘들때 도대체 수학은 누가 왜 만들었는지를 많이 묻습니다.^^ )
문명과 수학 1편에서 깊게 다루지 못하였던 숫자의 기원에 대하여 원시시대의 손가락표현법과
아프리카의 이상고, 그리고 잉카제국의 카푸(결승문자) 마야문명의 숫자표와 Tzolkin과 Haab를 보고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우르왕조 그리고 슐기왕의 회계를 통하여 전 세계의 숫자를 여행을 하듯이 보면서
수의 탄생(수학의 시작)을 자연스럽게 이해했으면 합니다.
원시시대의 수 와 손가락을 이용한 수의 표현
원시시대의 숫자의 개념의 탄생을 우선 표현하였습니다.
문명과수학1편과 마찬가지로 많다 적다가 아닌 구체적인 하나, 둘, 셋 의 수의 개념의 탄생이 먼저였죠.
그리고 그것을 사물또는 손을 통하여 표현을 하였습니다.
숫자의 기원1편에서는 이전에 다루지 못하였던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수의 1000 단위 표현법까지를 담았습니다.
이렇게 손가락으로 큰수들까지 다 표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기록으로 남기고 복잡한 계산을 하고
계산법과 기하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을까요?
'
이상고의 뼈와 잉카제국의 결승문자
1950년 아프리카 콩고의 에드워드 호숫가 근처에 있는 이상고라는 곳에서
날카로운 것으로 새긴 듯한 눈금들이 있는 동물 뼈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수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를 색실에 매듭을 지어 표현한 잉카 제국은 15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대의 페루를 중심으로
지금의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칠레,에콰도르의 영토에 걸쳐 번성했던 나라였습니다.
금을 녹여 아름답게 세공하는 기술이 뛰어났던 잉카 제국은 황금의 도시로 유명했죠.
언어는 있었으나 글은 없었던 그들은 정확한 기록을 남길 방법으로
색실에 매듭을 지어 의미를 전달하는 키푸라는 결승문자를 사용했습니다.
키푸는 양털이나 솜으로 만든 1미터 정도 길이의 굵은 끈에
여러 가닥의 또 다른 끈을 매달고 다시 색실을 엮어서 숫자와 여러 가지 정보를 나타내는 방법입니다.
색실의 위에서부터 내려오며 숫자를 읽었습니다.
숫자와 다른 정보는 색깔과 길이, 위치 등을 달리하여 나타냈습니다.
빨강이면 군대, 노랑은 금, 초록은 은, 흰색이면 곡물을 의미했죠.
이렇게 숫자와 글을 표현하는 키푸는 잉카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 위치한 학교에서
훈련받은 전문가들만이 만들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암호 해독가와 수학자들도 완전히 그 뜻을 알아내지 못한 정교하고 복잡한 키푸가 아직 많이 있죠.
부족의 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동물 뼈에 눈금을 새기거나
색실을 묶어 수를 표시하는 것은 매우 불편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10을 기수로 사용하지 않고 20을 기수로 사용한 마야문명의 숫자표와 Tzolkin과 Haab를 다루며
마야사람들이 52년마다 살고 있던 도시를 버리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이유까지 다루며 1편이 끝났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우르왕조 그리고 슐기왕의 회계를 통한 본격적인 수학의 시작과
전 세계의 수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zqDVx08axO8?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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